2018.01.13 우리영화베스트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관객과의 대화 진행 : 이석범 관객프로그래머 참석 : 윤성호 감독 정리 : 주진하 관객프로그래머
이석범 프로그래머 : 안녕하세요. 저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진행하게 된 이석범이다. 감독님 인사말씀 부탁드린다.
윤성호 감독 : 일찍 와서 오랜만에 작은 스크린으로나마 보고 싶었는데 다른 카페에서 일을 하느라 늦었다. 방금 보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8년 전에 만든 윤성호다.
이석범 :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는 윤성호 감독님을 몰랐다. 영화제 예매를 할 때 ‘악마를 보았다’를 보려고 노숙을 하다 그 영화는 놓치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봤다. 노숙 때문에 조금 졸면서 보긴 했다. 웹드라마 형식이어서 재미있게 봤고, 에브리원에서 했던 10부작 드라마도 챙겨봤다. 아무래도 그래서, 선정작을 고르라고 했을 때 거리낌 없이 고를 수 있었다. 먼저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다. ‘웹드라마’ 라는 최초의 시도를 하게 된 과정이 어떻게 되나?
윤성호 : 저의 정체성을 독립영화인, 방송인 등 멀티트랙으로 생각하는데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나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공력을 극장 장편영화에 쏟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만든 영화는 전문 배우들이 나와서 찰진 연기나 스토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었는데, ‘은하해방전선’을 사랑해주셔서 진짜 내가 잘하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게 되고, 욕심이 생겼다. 잘 된 것은 아니지만 배우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쓰며 정서가 드러나는 영화를 찍는 것에 재능이 없지는 않다고 느꼈다. 천만 관객은 아니어도 몇만 관객과 꾸준히 만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썩 끌리는 제안이 없어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교류하는 분들로부터 데뷔 후 경험담들을 들으면서, 그 과정을 꼭 겪어야하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버티면서 만들 이야기가 없기도 했고. 그러던 차에 ‘은하해방전선’을 보신 분들이 ‘이게 시트콤이지 영화냐’고 말해주신 것이 고마웠다. 평소 시트콤을 많이 본다. 어떻게 보면 영화보다 시트콤을 더 많이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자는 생각에 인디시트콤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보게 됐다. 의뢰에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꽁트가 참 많다. 의뢰에 대응하다보니 파편적인 다른 이야기가 됐고, 그렇다면 5분짜리를 이어서 긴 스토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만든 것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다. 사흘에서 나흘정도를 촬영했다. 부산영화제에 초대받았을 때는 좀 놀랐다. 인터넷에 모두 공개해놓은 작품이어서.
이석범 : 막상 생각난 게, 넷플릭스 좋아하시지 않나.
윤성호 : 넷플릭스 말고도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부각되는 것 같다.
이석범 : 여러 컨텐츠들을 접하시면서, 다루고 싶은 레파토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 사실은 드라마는 즐기는 차원이고, 레퍼런스가 되는 경우는 줄어드는 것 같다. 오히려 ‘은하해방전선’을 보면서 그것과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관찰 영역에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이제와 보면 임지규가 맡은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든다. 자기변명 같은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이 싫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역시 황제성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수단이다. 영화적인 욕심보다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이석범 : 한 가지만 더 질문하겠다. ‘출출한 여자’와 같이 에피소드마다 다른 감독들이 연출을 맡는 방식은 미국드라마의 형식인데, 이런 시스템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윤성호 : 미국에서는 시나리오작가가 쓴 에피소드를 두고 사전제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감독들이 상을 받는다기보다는 에피소드에 상을 준다. 날카로운 질문인데, 그것을 약간 흉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티비 드라마를 온라인에 올리는 것이 최초는 아닐 텐데, 나처럼 치기어린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5분을 만들어놓고 ‘에피소드 1’ 이런 식으로 올렸다. 다 붙여봤자 50-60분인데 치기 어리게 쇼 러너를 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지 않아서 주위 감독들의 사례를 구경하며 참여해 학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공동연출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잘 찍어서. 농담이고, 그것이 좀 더 경제적이라서. 우리나라 드라마환경이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관객1 : 감독님 영화는 근원적인 부분 자체가 다르다. 무성적인 영화나 섀도우 복싱장면 등, 이런 아이템들을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
윤성호 : 이제는 그게 특이한 장치가 아니어서 뭐라 말하기 힘들다. 얼굴의 볼 발그레 같은 것도 지금은 다 하는 것이 되어서. 내가 음성합성프로그램을 2001년부터 사용했는데, 그것을 예능에서 사용하는 것을 봤을 때 내가 먼저 했는데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영화과 출신이 아니어서 친구들과 협업할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뛰어든 사람이라 정식 문법이 아닌 변주를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요새는 오히려 다른 장치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
관객2 : 저는 다들 케이티 올레 티비를 보신다면 윤성호 감독님을 익숙하게 느낄 거라 생각하는데, 영화는 처음 봤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감독님의 역량을 느꼈다. 영화에서 황제성이 역할을 바꾸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당시에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위트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보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 사실 이것도 영화로 기획한 것이 아니긴 한데 무슨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신과 함께’가 효도를 전파하려 만든 것은 아니지 않나. 영화 끝에 교훈이나 메시지가 아니라 ‘아 참 아이러니하네’ 리는 생각을 한다면 영화가 무언가를 가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출자는 만들 이유 관객은 볼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매니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의 스토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야기. 또한 그 사람이 겪는 일에 대해 아무도 올바른 충고를 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표현해주고 싶었다. 남자들의 솔루션 제시와 여자들의 공감을 다룬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내 작품을 보면 모두 누군가와 이별을 겪고서 시작하는데, 결국에는 그들과 어울려 사는 삶이라는 것. 이것이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관객3 : 장면의 대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적이 많은데 그것은 상황을 먼저 보시는지 문장에 영감을 받는지?
윤성호 : 너무 좋은 질문인데, 나는 지금 그런 장면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저격해서 조롱하는 것도 싫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극의 맥락과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는 것이 싫다. 그래서 선배들과도 다툰 적도 있고. 전에는 문장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게 됐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컨디션을 생각하고, 그 이후를 상상한다. 전에는 ‘대구라면 백금당에 가야지’하고 갔다면 이제는 대구의 누군가와 어딘가에서 대화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문장 하나를 써먹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으려 한다. 여러 가지 조건들 속에서 여행하고, 탐험하면서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좋지, 스스로 촌철살인이라고 생각해 메모해 두었던 문장을 대사로 쓰지는 않는다. 예를 들자면 남자들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손을 잘 씻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평소 생각했던 내용을 이용해 ‘출중한 여자’라는 드라마에서 천우희, 안재홍배우와의 촬영중 대본에 없던 장면을 만들어 냈다. 이런 것처럼, 살면서 관찰한 것을 적절할 때 재료로 가져오는 게 더 좋다.
이석범 : 제가 하나 영업하자면, 윤성호 감독님의 작품들 중에 가려진 작품들이 많다.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윤성호 : 최근 여러 의뢰들을 받는데, 경제적인 문제와 여러 문제들을 고려하다보면 적절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 중에서 흥미로운 의뢰가 있었다. 노조시트콤인데,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현재의 웹드라마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녀관계나 관습적인 것들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고, 여적여 구도도 너무 많이 쓰이고, 그래서 나는 웹모바일보다는 이어지는 스토리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노조시트콤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저는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고, 다른 어린 감독친구들이 5분짜리 다섯개의 노동조합 시트콤을 만든 게 있는데 곧 페북에 올릴 생각이다. 광고를 좀 하겠다. ‘그 새끼를 죽였어야했는데’ 라는 제목이다. 노동조합이 나오지는 않는다. 드라마 작가들 이야기다. 시즌2를 한다면, 하반기에 페미니즘 이슈로도 해볼 생각이다. 그걸 봐주셨으면 한다. 옛날 두근두근 시리즈는 안 보셔도 된다. 아,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에는 ‘2박 3일’이라는 단편에 출연한 정수지 배우가 출연한다.
이석범 : 마지막 질문 받겠다.
관객4 : 대구에서 오랜만에 뵈어서 반갑다. 자타공인 배우발굴하신다고 글을 올리실 때가 많은데, 단막극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에서도 인물이 돋보였다. 배우를 고를 때, 캐릭터를 만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지금 준비하고 계신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 참 신기한 게, 지금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은 배우들이다. 저 사람과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좋은 캐스팅이 되는 것 같다. 이주승배우의 경우 아주 뛰어난 배우인데, ‘은하해방전선’을 다시 만든다면 꼭 이주승배우를 캐스팅하고 싶다. 사실 이주승배우는 제 작품에서 성인 역을 처음 했을 거다. 기자나 형사로 나온 적은 있었으나 보통 학생으로 출연한 적이 많다. 안재홍배우도 족구왕 이전에는 통통하고 귀여운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안재홍이 설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풍채도 있고, 주변 여성들이 설레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사귀고 싶은 남자 이미지로 연출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는 아이돌과의 작업 의뢰도 많은데 가능하다면 아이오아이의 최유정 김도연과도 작업해보고 싶다. 그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케미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배우들을 살피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요새의 제 모티베이션이다. 그리고 이후의 계획은 연락이 오는 것들은 많은데 별로 재미가 없다.
이석범 : 혹시 넷플릭스에서는 없었나
윤성호 : 엄청나게 히트를 한 배우나 감독이 아니고서야 넷플릭스에서 제안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서 와야하는데. 다른 제안 중에서는, 음. 올바른 임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취지만을 들이밀 수 없어서 고민이 많다. 그 일로 인해 괴리를 많이 느낀다. 요즘은 커머셜한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권한이 6-70프로가 되지 않으면 거절하는데, 그것도 힘들다.
이석범 : 시간 관계상, 마무리 인사 부탁드린다. 저는 윤성호 감독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윤성호 : 제가 좀 설명충이다. 너무 오랜만에 대구의 관객들과 대화를 나눠서 그런 것 같다. 부산 다음으로 인연이 많은 도시가 대구다. 그런데 청소년 1318 이후로 거의 9년만이다. 나이는 먹었고, 중년 남성이다 보니 쿨하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것이 재미였던 젊은 시절과 달리 요새는 말을 할 때 고민이 많아진다. 혹시나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강의나 정보제공을 많이 하다 보니 설명이 많아진 것 같다. 설명충 윤성호였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긴 시간 재미있게 들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