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4일 우리영화베스트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씨네토크 진행 : 조은별 관객프로그래머 (이하 “조”) 참석 : 김명선 대구여성회 성문화교육센터장 (이하 “김”) 전예지 관객대표 (이하 “전”) 정리 : 최은규 관객프로그래머
조 – 다들 영화 잘 보셨나요? 저는 이 영화를 2015년에 서울에서 처음 봤는데요, 처음에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영화라고 하길래 굉장히 통쾌하거나 이론적인 공부가 되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의외로 콕콕 찌르는 부분이 있고 또 같이 울고 싶기도 한, 그런 영화였던 것 같아요. 영화 속 감독님처럼, 나도 저랬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부터 시네토크를 진행할 텐데, 참석해주신 패널 분들 소개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 대구여성회 성문화교육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명선입니다. 반갑습니다
전 – 저는 전예지 라고 하고요. 그냥 대학생입니다 (웃음)
조 – 감독님이 지금 프랑스에서 유학중이셔서 참석을 못하셨는데, 그래도 저희가 대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아요. 두 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영화를 본 소감,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을까요?
전 – 저는 사실 오늘 전에도 영화를 봤었는데,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건 아무래도 캐릭터의 몸에서 오는 불편함 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보통의 여성에 가까운 몸이긴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나오는 것들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런 것들에서 어떤 본능적인 불편함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영화 속에서 학생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계속 선생님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우리가, 도대체 몇 살부터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 – 저도 예지씨 말처럼, 학생들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네요. 아무래도 답답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저들의 저런 인식이 과연 변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또 인터뷰를 보다 보면 여성과 남성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있어요. 여성들은 주로 충고나 조언 위주인 반면에, 남성들은 보다 평가를 내리려고 하는, 그런 미묘한 차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감독인 아름씨에게 집적대는 남성분들도 사실, 객관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외모는 아닌데 (웃음) 저 당당함의 근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런 생각도 햇었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경쾌한 톤의 영화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 – 저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것도 인상깊었지만, 연애에 대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시각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니가 꾸며야 연애를 할 수 있어” 라던가, 아니면 저는 그냥 연애를 하고 있는데 “역시 꾸미니까 연애하네” “연애하더니 예뻐졌어” 이런 말들이 나와요. 외모에는 늘 연애에 대한 문제들이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예지씨 말을 들으면서도 생각했었는데, 혹시 일상에서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 어떤 경험이나, 고민 같은 것들이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전 –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계속 뚱뚱한 여자애였어요. 근데 그게 너무 일상적이 되니까, 스스로 거기에 무감해지게 되더라고요. 나는 원래 이런 몸이었으니까, 별로 크게 생각하지 말자. 그러고 있었습니다. 근데 저한테 5살짜리 조카가 있어요. 그 친구랑 놀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근데 고모는 너무 뚱뚱하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게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그냥 애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5살짜리 애가 그런 얘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더불어서 이 영화를 봐도, 정말 외모에 대한 이야기로만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채워내잖아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외모에 대해 정말 너무 쉽게 말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 – 어떻게 보면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걱정한다는 이유만으로 외모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2,3년쯤 전인가. 어머니가 “너 살 좀 빼야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러셨던 적이 없었는데, 엄청 충격이었죠. 그 후로 괜히 “혹시 또 그런 말 듣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게 되고. 어쩌면 나를 위한다는 말에서 시작된 외모 평가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은 왜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는 걸까요?
김 – 외모지상주의는 사실 외모 차별이고, 외모 권력입니다. 외모는 사회 현상인 동시에 이데올로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데올로기는 내면화가 되죠. 그래서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인사로도 외모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외모에 대한 발언이 어떤 관심이나 덕담처럼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외모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어떤 실례가 된다는 인식조차 없어지는 거에요. 대한민국이 인구 대비 성형수술 횟수가 세계 1위에요. 시장규모는 4분의 1입니다. 어마어마하죠. 그럼 왜 이렇게 외모문제가 극심해졌을까? 생각을 해보면, 정말 여러 가지가 얽혀있어요. 우선 외모를 중시하는 성차별적인 규범들, 그리고 거기엔 미디어의 역할이 큽니다. 매스컴에서 구현하는 어떤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굉장히 획일화돼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예전에는 덜 그랬겠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보급됨으로써 비교영역이 우리나라 전체로 확장되는 거죠. 결핍감이 더욱 심해집니다. 또 외모 문제는 이제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가 됐어요. 전문직이 특히 그런데, 외모 관리가 되지 않으면 취업이나 승진에 실질적인 불이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취업성형, 면접성형 이런 말도 돌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노동의 문제는 또 자아정체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여성의 몸매가 곧 여성의 정체성이 되는 거죠.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미용산업이 활발해진 것도 이유가 될 것이고요. 이렇게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이 개입되면서, 성차별이 한 단계 진화된 형태로 존재하게 됐다고 봅니다.
전 – 요즘 한국전력에서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면접복장으로 똑같은 모양 흰색 티셔츠를 나눠 준다고 하더라구요. 옷차림으로 차별하지 않겠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사람마다 사이즈가 다르니까 사이즈를 적어서 내야 하잖아요. 근데 그게 또 분명히 부담스러운 일이고, 혹시 만약 떨어진다면 혹시 내 신체 사이즈 때문에 떨어진 건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좋은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긴 하지만, 여전히 그런 근본적인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비만클리닉을 권유하는 의사들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환자이기도 하지만 잠재적 소비자이기도 하니까요. 단지 개인의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적, 산업적으로도 밀접하게 얽힌 문제라는 것이 일상에서도 너무 잘 드러난 사례인 것 같습니다.
조 – 박강아름 감독님도 그런 것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 같고, 그래서 이런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객석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요. 혹시 질문이나 감상을 함께 나눠 주실 분 계신가요?
관객 1 – 사회에 만연한 외모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김 – 사실 외모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있을 수가 없죠. 저조차도 그래요. 절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또 절대 피해서는 안 되겠죠.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 대한 다른 이야기, 그리고 다른 가치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만들고 발화를 해야 해요. 결국 답은 담론화입니다. 예전에는 외모관리를 하면 좋은 거였지만, 이제는 안 하면 문제가 되는 것으로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 잣대를 갖게 되는 것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사람에게 뚱뚱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자발적으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구성된 거죠. 최소한 지금의 우리가 출발할 수 있는 지점은 외모에 대한 지적을 포함해서 끊임없이 외모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부분은 줄여나가려는 노력입니다. 물론 다양한 문화기획이나, 교육을 통한 측면으로도 시도한다면 더욱 좋구요.
조 – 막간을 이용해서 프랑스에 계신 감독님에게 미리 드렸던 질문내용을 좀 알려드릴게요. 우선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과 안 좋았던 점을 여쭤봤는데요. 좋았던 점은 영화에서 촬영된 공간이 여성 근로자 복지 아파트여서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항상 카메라를 들고다니며 말을 하니까 덜 외로워서 좋으셨다고 합니다. 안 좋았던 점은 아무래도 외모에 대한 영화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끝없이 외모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던 게 좀 스트레스셨다고 합니다. 사실 제작기간도 총 7년이 걸린 영화였으니까요 (웃음)
김 – 사실 외모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는 칭찬 혹은 비난 두 가지인데, 어느 쪽으로 하나 결과는 똑같은 것 같아요. 칭찬받은 쪽은 그걸 계속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비난받은 쪽은 그걸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니까. 결국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네요 (웃음)
관객 2 – 영화 속에 나오는 감독님께서도, 사실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굉장히 즐기시는 분이시고, 거기에서 어떤 밝은 에너지가 나오게 되잖아요. 하지만 그런 에너지만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같은 외부 공격을 이겨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 “어떤 것이 아름다움이다” 라는 획일화된 규범들이 존재한다는 것에서 오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 따르지 않았을 때, 어떤 제제와 피해가 들어온다는 게 문제인 것 같고요. 우리가 스스로 아름다워지기를 원해서, 스스로를 꾸밀 수 있죠. 다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어디서 오며, 아름답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그 욕망이 강제된, 이식된 욕망인가 아니면 정말 내가 스스로 바라고 원하는 그런 욕망인가. 그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 –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소감을 전해드릴게요. 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끼셨다고 하고요. 그랬던 만큼 이렇게 영화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더욱 감사하다는 말씀을 보내오셨습니다. 추가로 영화 소식을 계속 듣고 싶으시다면 페이스북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페이지 팔로우 한번 부탁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웃음) 오늘 영화 이야기 해주신 두분께도 마무리 인사말씀 한번 부탁드릴게요.
전 – 영화를 세 번 정도 봤는데, 처음으로 봤을 때는 아무래도 이상화된 것이 아닌, “진짜 여성” 의 몸을 본다는 게 불편했던 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를 거듭 보다 보니, “그래. 저게 진짜 내 몸이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몸을 인정하게 되는 시간이었고요. 그리고 제가 제 몸을 인정하게 된 것처럼, 여러분께도 그런 좋은 느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 – 사실 어떤 모습이 예쁜 모습인지는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중에 보니까 진짜로 예뻐 보이더라고요. 규정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더 이상 호도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에 당당해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것들이 사람 혼자서는 힘든 일이니까, 항상 같이 모여서 얘기하고 연대하고 싶습니다. 혹시 어디서 해야 할지 모르시겠다면 대구여성회를 찾아주시면 좋겠네요. (웃음)
조 – 저도 영화를 세 번 정도 보면서 다시 느꼈는데, 사실 저는 항상 저의 최종 꿈을 감독 겸 배우라고 말해왔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뭐냐면, 제 최종 꿈이 배우인데 나를 써 줄 감독은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감독을 할 거라고 했던 거였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요. (웃음) 하지만 이제는 제 최종 꿈에 대해서, 좀 더 당당하게 밝히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외모에 대해서 “아 내가 이렇게 하고 나와도 될까?”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야겠다, 감독 겸 배우가 되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이것도 반 농담입니다. (웃음) 오늘 이 시간은 저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였어요. 이 자리에 와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극장에서 뵜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