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9일 토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 - 김수영 감독 단편전> 참석 : 김수영 감독 (이하 “김”) 진행 : 금동현 관객프로그래머 (이하 “금“) 정리 : 최은규 관객프로그래머
금 : 두 달 전 “능력소녀”를 오렌지필름 기획전을 통해 보게 됐습니다.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고, 2010년도 이후에 본 한국영화 중에 가장 좋게 감상한 영화였어요. 그래서 김수영 감독님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세 편의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사회에서 주류에 속한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인물들에게 꾸준히 시선을 보내고 계신데요.
김 : 제 내면에서 나오는 부분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찰에서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요, 거기에 제 상상을 결합해서 나온 인물들입니다. 그런 생활을 했거나, 그런 사람들을 봤거나, 그런 사람들과 친하거나 해서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 : <탑골당 만행사건> 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건가요?
김 : 거의 10년 전 영화인데요, 그 당시에는 제가 영화에 나오는 그 백수 캐릭터 같은 심정으로 살았어요. “프로 백수” 가 돼서 살면 참 좋겠다, 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 살았던 때인데, 프로 백수랑 불만이 많고 되바라진 여고생 캐릭터들을 충돌시키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금 : <능력소녀>를 정말 인상적으로 봤는데, 제가 좋아하는 다른 영화들이 생각났습니다. 비슷한 소재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 가 먼저 떠올랐고, <여고괴담> 도 떠올랐는데요. 이런 영화들에게 영감을 받은 부분이 혹시 있을까요?
김 : 제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분의 초기작들도 좋아하고, B급 감성이 결합된 공포영화들도 좋아해요. <캐리> 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저도 왕따 소녀의 피의 복수극? 같은 것을 에너지 넘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금 : <능력소녀> 엔딩부의 숲들은 CG로 만들어진 화면이라고 하던데요.
김 : 이 영화는 성남시에서 지원을 받은 영화라 성남시에 있는 장소를 로케이션 장소로 택했어야 했는데요, 학교 뒤편에 있는 야산을 골라서 찍었는데 드론샷을 찍다보니 그 공간을 숲으로 만들고 싶더라고요. 어느 정도 현실에서 살짝 비껴난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공간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굳이 2010년대가 아닌 모호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Q1 :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에 나오는 이한철 씨의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라는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영화 중간중간에 그분의 다른 노래들도 들어간 걸 봤습니다. 이한철 씨의 노래를 어떻게 해서 삽입하게 되었나요?
김 : 원래부터 이한철 씨의 음악을 좋아해서, 영화를 찍기 전에 직접 연락을 드려 찾아 뵙고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는 나중에 영화 속 캐릭터들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해서 부르는 노래로 설정을 했는데, 일부러 좀 유치하게 부르라고, 좀 못 부르라고 디렉팅을 넣었습니다. (웃음)
Q2 : 개인적으로는 오늘 보여주신 세 편이 모두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은 혹시 본인 스스로 코미디 영화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 : 사실 블랙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하고요, 아는 사람만 아는 유치한 말장난. 그런 걸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어서 군데군데 넣긴 했는데, 좋아하긴 하지만 코미디를 잘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Q3 :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의 여성분과 <능력소녀> 의 선생님 역으로 출연한 분이 같은 분이셨고, <우리는 ~> 에 나오신 연우진씨가 <능력소녀> 에 커피차 지원을 해주신 걸로 크레딧에서 봤는데, 사람 사이의 이런 인연들을 굉장히 중시하시는 편인가요.
김 : 여기 저희 PD님이 와 계시는데, PD님의 역할이 굉장히 컸어요. PD님이 현장에서 소통이나 조율을 굉장히 잘해주시고, 그래서 그때 만든 인연들이 계속 꾸준히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걸 잘 못하는 편인데, PD님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금 : 세 편의 영화가 시간차가 굉장히 크고, 각각 굉장히 다른 색깔의 영화였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본인의 장르에 대한 어떤 관점이 있으신가요?
김 : 그때그때 제가 좋아하는 관심사에 따라서 변화해 왔던 것 같습니다. B급 영화, 공포 영화, 미국 영화 이런 것들을 특히 좋아하긴 하는데, 워낙 두루두루 다 좋아해서, 그런 게 장점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금 : 능력소녀는 해외 영화제에도 초청이 되었는데요. (*스웨덴 스톡홀름영화제 초청) 해외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 : 스웨덴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제가 초청받은 섹션은 밤새 영화를 보는 심야상영 섹션이었어요. 그 시간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런 장르영화의 매니아분들이셨을텐데, 영화가 끝나고 중간에 잠깐 나가서 인사를 했더니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평소에 그런 거 많이 보시는 분들이다보니 더 좋아해 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Q4 :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로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서사를 만드시면서 참고하신 게 있거나 다른 일화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 어느 한 가지를 열심히 파서 나왔다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에 걸쳐 이런저런 재료들이 쌓였다가 몇 가지가 결합되서 나온 것 같네요. 처음에는 나에게 어떤 능력이 그냥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면?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그런 능력이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면 굉장히 이야기가 파국으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의 다른 부분들에는 제 개인적 기억이 많이 녹아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면서 실습을 했던 기억도 집어넣었고, 스트레스로 인해서 신체 변형이 오는 상황 역시 제가 실제로 스트레스 받아서 임파선이 부은 적이 있는데 그 기억도 넣었습니다. 그때 되게 괴물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랬던 상황을 좀 더 극화시켜서 넣었어요.
금 : 능력소녀가 여성영화제에 초청되지 않은 게 좀 의아했습니다.
김 : 굳이 여성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제 스스로의 경험이었기 때문에 소녀들이 출연하게 됐어요. 또 어떤 정치적 어젠다를 정면으로 부각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장르적이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아니면 거칠고 폭력적인 여성들이 많이 나와서 별로 안 좋아하셨을 수도 있죠. (웃음)
Q5 : <탑골당 만행사건> 의 마지막 엔딩부분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는데, 즉흥적으로 연출하신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 : 약간의 즉흥성이 들어간 부분이 있는데, 영화가 딱 하루치 일정으로 찍은 거였는데 편집을 하다 보니 좀 아쉽더라고요. 말이 좀 안 되긴 하지만 뭔가 더 붙여보고 싶어서 찍었습니다. 논리적 비약이 많긴 해요. (웃음)
금 : 저는 그런 면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요. (웃음) <능력소녀> 는 장편화 계획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진행 과정을 여쭤볼 수 있을까요?
김 :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 하고 있고요. 얼른 완성을 시켜서 투자 개발 단계를 거치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빠르면 내년에 영화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금 : <여고괴담> 다음 시리즈를 감독님께 맡기면 되게 좋겠다는 반응들도 있던데요.
김 : <여고괴담>이 한국에선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이고 공포 장르의 대표적인 시리즈라서, 그런 반응들에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일단 '능력소녀' 프로젝트의 장편화 작업에 주력해서 장편 능력소녀로 관객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Q6 : 오랜만에 본인 영화를 다시 보셨는데, 감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김 : 재밌었어요! (웃음) 유치했는데 유치하면서 재밌더라고요. 뭔가 보는 재미가 있었고, 그래 그때는 저런 생각을 했었지 하는 생각? 그리고 그때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게 별로 크게 부끄럽지는 않네요. (웃음)
Q7 : 영화 세 편이 서로 워낙 달라서 가끔씩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만드실 때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김 :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그때의 장르나 정서는 항상 달랐던 것 같아요. <탑골당 ~> 때는 싸게, 빨리 찍는 게 제일 중요해서 50만원 제작비로 딱 하룻동안 찍었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ucc 같은 느낌으로 막 찍었고요. <우리는 ~> 같은 경우에는 사실 멜로나 로맨스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 당시 연인들 사이의 스릴러 컨셉으로 장편 시나리오를 쓰던 와중에 관련해서 찍은 단편입니다.
금 : 세 편 다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 의 의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영화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탑골당 ~> 은 정말 독립영화 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이고, <우리는 ~> 은 독립영화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이며, <능력소녀> 는 한국에서 거의 독립영화 쪽에서만 볼 수 있는 장르영화였으니까요. 독립영화의 다양한 면면을 모두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Q8 : <탑골당 ~> 에 출연하신 배우들은 전부 대학 동기분들이신 건가요?
김 : 다는 아니고 몇몇 분들은 소개를 받았어요. 그중에 코 뚫은 여자분 같은 경우에는 지금 락커에요. 웨이스티드 쟈니스라는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교육받은 연기가 아닌 어떤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그 끼를 안 버리고 락커로 맹활약을 하고 있네요.
Q9 : 영화 끝부분에 나온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가요?
김 :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노래를 만들어 붙이고 싶어서 음악감독 분께 부탁을 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앞서 말한 코 뚫은 친구는 작사를 했는데, 그냥 흥겨운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서 만들었습니다. 흥겹고 비약적인 화해? (웃음)
금 : <능력소녀> 의 이유미 배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어떤 과정으로 캐스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 실제 성격은 잘 몰랐고, 이미지가 괜찮아서 캐스팅을 했는데, 다음 스마트검색에서 몇 년생 여자배우 라고 치면 얼굴이 쫙 나와요. (웃음) 그리고 실제로 만나보니 캐릭터가 굉장히 어울리더라고요. 마침 이런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친구라,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도 굉장히 높았어요. 연기도 당연히 잘 했고.
금 :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앞으로의 계획과 마지막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 능력소녀가 더 상영됐으면 좋겠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아마 7월에 미국 달라스아시안영화제에서 상영할 것 같습니다. 능력소녀 장편을 올해 안에 꼭 들어가는 게 목표에요.
금 ; 능력소녀를 되게 재밌게 봤는데 그 외에 감독님의 다른 작품들도 볼 수 있고 직접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