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4 우리영화베스트 <려행> 관객과의 대화 진행: 금동현 관객프로그래머 참석: 임흥순 감독 정리: 정석원 관객프로그래머
금동현 관객프로그래머(이하 금) : 감독님 인사 부탁드린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 : 반갑습니다.
금 : 이 영화는 산을 오르는 얘기라 생각한다. 제보자와 제보자의 동행을 통해 이야기를 드러내는데 장소를 산으로 장소한 이유가 궁금하다.
임 :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 참여 작이라 안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하고 싶었고 안양천이라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안양시민들이 즐겨 찾던 공간이지만 대기업이 만든 상권이 번영하면서 죽은 상권이 되었다. 그곳을 다시 살리고자 시와 예술대학이 협력하여 공공미술 프로젝트 만들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안양의 천과 산이라는 것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한정된 공간이지만 재미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제작하게 되었다. 또 개인적으로 2010년부터 자연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30대부터 자연스럽게 눈이 자연으로 가게 되더라.
질문1: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첫 번째로 제목 여행을 ‘려행’으로 했는데 그 의도가 궁금하다. 둘째로 주인공들이 전부 여성분들인데 여성분만을 대상으로 한 이유도 궁금하다.
임 : 나는 크게 주제를 따라가면서 작업하는 것 같지 않다, 가슴에 와 닿아서 혹은 가장 중요하거나 필요한 것인데 얘기하지 않는 것들을 다루고자 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질문과 일맥상통할 것 같은데 우리는 북한이라는 곳을 잘 모른다. 교육에서도 잘 안 다루고 국가에서는 남침, 공산당, 독재 등 부정적으로만 다루고 차단한다. 마음속으로 북한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원제는 북한여행이었다. 이들의 삶의 과정역시 일종의 여행이라 생각했다.
질문2: 실제 탈북자분들이신 것 같은데 작품에 참여한다 했을 때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았는데
임 : 당연히 크다. 작품을 만들면서도 항상 염두에 둔다. 이 분들은 남한 사회를 사셔야 되는 분들이다.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다큐 작업에 있어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참여 전에 전화도 드리고, 1차 인터뷰도 진행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부담을 줄이고자 했다.
금 : 전작에서는 재연배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임 : 한 분 계셨는데 재연배우라 하기는 그렇다. 미술, 퍼포먼스라 보는 게 맞다.
금 : 이번 작품에서는 실제 주인공이 재연을 했는데 이런 전환에 대한 인식이 궁금하다.
임 : 미술을 초창기에 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그 사람 본인이 직접 하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미술이라는 장르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카메라 교육을 워크숍으로 진행하며 이 작품에서 그런 것을 좀 더 활용했다. 상황을 연기함으로써 과거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좀 더 고민할 수 있다고 봤다.
질문3 : 카메라의 위치나 움직임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어떤 인터뷰는 대상자가 완전히 쏠려 있거나 계곡의 야간 인터뷰에서 스텝이나 장비들이 보이는 등 여러 각도로 본 인터뷰의 의도나 계획이 궁금하다.
임 :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진 규격이 편견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안정된 구도라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깨고 싶었다. 단순히 깨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인물에 맞게 변형하는 것도 있다. 가령 인물이 숨어 있다면 숨기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변형을 한 것이다.
질문4 : 주변에 북한에서 온 형이 있다, 중학교 같이 다녔고 나이 차이는 6살 났다. 그 형은 북한 소년군으로 있다 형제와 함께 탈북 중국에서 2,3년 살다 탈북 했는데 이런 주변사람이 있었지만 탈북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형이 한국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말로서는 그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알고 싶고 굳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임 : 우선 자막에 넣기는 했지만 탈북이라는 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북한을 탈출한 게 아니라 돈을 벌려 잠깐 넘어갔다는 등 눈떠보니까 남한에 와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정권 등 여러 상황에 따라 태도가 변한다. 이분들은 북한이 싫어서 여기 오신 분들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건 사실이다. 인터뷰를 하며 분노감에 치밀었다. 다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새터민 분들에게 상처이고 심각한 얘기가 될 것 같아 얘기하기 힘들 것 같다. 돈으로 사서 아이를 낳게 하고 가두는 등의 행태는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고 개인적으로 수치심을 느낀다. 이 작품에는 얘기하기 쉽지 않아 얘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금 : 아코디언 연주와 노래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아코디언 연주자는 컬러풀하고 노래하는 사람은 흑백인 게 특이했다.
임 : <피바다>의 한 장면을 따왔다. 한 영상이 배경은 흑백인데 주인공은 컬러풀했다. 그 느낌이 재밌게 여겨져 영화에서도 사용했다.
질문5 : 산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곤충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하다.
임 : <비념>때 자연 풍경을 보고 자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연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재화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대신 나무나 곤충 등 자연물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싶었다. 토테미즘·애니미즘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자연물을 사용했다. 그게 현장에서도 보이더라. 자연이 주는 징후도 있지 않은가. 개미들이 지진이 나기 전에 움직인다든지 그런 것도 관심 많았다. 쉽게 생각하면 개미처럼 일한다는 말도 떠올라 영화에 넣었다.
질문6 : 김일성이 죽고 난 다음에 신기한 체험이 있었다고 했는데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임 : 더 얘기해 주셨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인터뷰 하다보면 객관적인 사실을 위주로 기록하지만 사실 이외에 일어났던 일들에 더 관심이 간다. <비념>에서도 4.3 당시의 징후(올챙이들의 죽음, 그물에 쥐 떼)에 대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러한 이야기들은 사실관계를 떠나 그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할 때도 꿈은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의 지점이기에 꿈과 같은 소재를 물어보기도 한다. 대학생이었던 94년도는 굉장히 더웠고 여름에 실기실에 가보면 수통에 쥐들이 죽어있던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다.
질문7 : 안양시에서 지원을 받다보니 삼성산이라는 거대한 세트장을 활용한 느낌이 들었다. 기존 한국의 다큐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하시는데 작업 방식에 대한 철학이 궁금하다. 영화의 전개에 있어서도 달과 물이 나타내는 의미가 궁금하고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과정이 마치 여행처럼 느껴지는데 여행이라는 부분이 이 분들이 겪고 있는 고투를 암시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임 : 그런 의미가 맞다. 느끼는 감정이 다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여 굳이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북은 산이 많고 남은 산이 힐링, 여가의 의미라 대조적인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고 달은 제주도의 전설로 태초에 달과 해가 2개라는 모티브를 따왔다. 둘로 나눠져 있는 부분이 나중에 하나로 되는 것을 보여줬다. 물의 경우 우리가 물을 건너며 죽으러 가고 물에서 태어나기에 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과 죽음을 이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려행>은 중편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시간이 길어져 장편이 됐다. 내 작업들 대부분이 전시 형태였다가 영화로 개봉했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전달할까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미술을 해서 그런지 전시장에 이런 이야기를 펼쳐보는 과정을 겪게 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라는 전시를 3채널로 하고 있고 하나는 두 채널이 서로 마주보게 설치한 작업도 있다. 그것은 극장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는 시각중심이라면 전시는 시각 외에 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더 많이 느끼게 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 희생자인 여성과 사회구조로 고통 받는 이란 여성 사이에 그들을 보고 있는 ‘나’는 시각적인 경험을 넘어 온 몸으로 작품을 체험하는 셈이다.
질문8 : 지난해 감독님의 전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보러갔는데 전시장이라기보다 세트장이라 느껴졌고 넓은 공간에 소품 같은 것들이 놓여있는 게 전부였다. 감독님의 설명과는 다른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 여쭤보고 싶다.
임 : 오픈 전에 보신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을 거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술관에서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여러 가지 용도로 확장시키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그때 보신 건 전시가 본격적으로 있기 전에 일본에서 한 할머니의 유품을 가져와 그 유품을 분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을 보신 것 같다.
금 : 산에 오를 때 나타난 노란색 풍선의 의미는? 의도된 건지, 우발적인 건지.
임 : 우발적인 상황을 좋아한다. 우연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흥미롭다. 노랑풍선은 입구에서 촬영할 때 행사 같은 게 있었고 거기서 나온 게 움직여 산 쪽으로 간 것이다. 노랑 풍선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촬영에 임한 배우들에게 부탁드렸다. 세월호 이야기를 가슴 속에 담고 있었는데 막 하지는 못했다. 고민만 했는데 그분들이 눈치 빠르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금 : 강아지도 계속 따라오던데.
임 : 강아지 역시 우연이다. 산 속 절에 있는 개다.
질문9 : 영화의 시점이 다양하게 느껴진다. 산으로 올라갈 때 관찰하는 시점도 있고 직접 인터뷰하는 시점이 교차되어 거리두기와 가까이 하기가 교차되는 느낌인데 맞게 생각한건지 궁금하다.
임 :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감정에 빠져들고 싶은 순간이 있는 반면에 감정에 빠지는 게 싫은 순간도 있다. 영화 형식을 생각하며 만들지는 않는다. 작업하면서 사람들과 만났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금 : 앞으로의 계획은.
임 : 아까 얘기가 나왔듯이 분단 이전에 사셨던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독립운동 하셨던 할머니, 4.3.때 빨치산 활동 하셨던 할머니, 역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지리산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중이고, 장편으로 편집할 계획이다. 그리고 <환생>역시 편집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