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임흥순<위로공단>감독 , 우: 김미련 미디어 아티스트
* 박스글은 임흥순 감독 답변
김미련: 먼저 간단하게 작품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다큐 <비념>도 그렇지만 <위로공단> 역시 다큐를 염두하고 제작을 한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작업한 여러 가지 미술프로젝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한편의 다큐 영화가 완성되었어요. 굳이 구체적인 동기를 설명하면 제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창작공간<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해서 작품을 준비했었는데, 금천구는 원래 구로구에서 있었어요. 행정구역이 구분 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요. 원래 구로구였던 금천구에서 작품을 구상하다보니 구로공단에서 일 하셨던 그 많던 여성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궁금증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구로공단에서 일하셨던 분들을 수소문해서 인터뷰했어요.그렇게 영화가 시작 된 거죠.
관객: 현재 가장 큰 여성노동문제는 출산과 유가로 인한 고용불안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노동자의 구조적인 차별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영화는 삼공화국부터 현재까지 조명을 해왔는데 과거부터 현재의 정권까지 각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이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사실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대중이 직접 고민을 하면서 풀어가야 한다는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 제도보다 노동의 본질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만들려고 했어요. 노동의 문제에 대한 입장은 경험과 지식에 따라 다 달라요. 뭐가 더 필요하고, 더 좋고, 더 불편하고, 각자 다 다릅니다. 이렇게 각자 입장의 문제들을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게 저런 것이 필요한지 안한지 담론을 만들어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권에 따른 노동정책의 차이는(웃음) 저는 다 똑같이 보어요. 실제로 노동자는 진보, 보수, 여당, 야당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이념이나 정당의 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서양화를 전공하신 화가이신데 노동을 주제로 다큐영화를 찍은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사실 한국에서 전공 그대로 일을 하시는 분이 얼마 있을까요. 농담이구요(웃음). 원래 그림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림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또 작업실에 갇혀서 그림만 그리다 보니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마침 학교에서 카메라가 있어서 찍기 시작했죠. 사실 서양화는 다양한 매체를 쓸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예전부터 역사나 사회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구려 역사를 그림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했었는데 삼국시대는 너무 먼 이야기 같아서 가급적 가까운 역사를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역사였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가지고 부모님이 일하는 것 같은 일상을 찍다보니 카메라를 통해서 본 풍경들이 실제로 본 풍경들과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카메라의 힘이 이런 거구나 그때부터 카메라를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되었고 사실 제가 작업하는 스타일이 다큐멘터리 제작 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림을 그릴 때도 사진을 찍고 조사를 하고 기록을 하고 작업방식 자체가 다큐형식이었으니 그게 잘 맞아서 이렇게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온 거지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위로공단>이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그러니깐 저에게 맞는 작업방식을 찾다 보니 다큐라는 형태가 자연스럽게 나온 거죠.
관객: 인터뷰 대상이 여성뿐인데 남성이 안 나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남성보다 여성을 더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웃음) 왜 그런 감정이 생길까 고민을 보니 단순히 이성으로, 연애의 대상으로 좋아하는 감정은 아니더라고요. 예를 들어 어머니 같은 경우는 제가 미술용품이 필요하면 옆집에 가서 돈을 빌려오시거나 공장에서 가불을 받아오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형이나 아버지 같은 경우 빨리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어야한다고 현실적인 이야기 했지만 어머니나 형수나 여동생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응원을 해주셨죠. 그런 고마운 감정이 지금까지 남아있고 그때 느꼈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십년정도 작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현실 문제라든지 사회문제를 들추어내는 작업들을 했거든요. 그런데 대안이나 희망이 뭐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미술에 답이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공공미술을 하면서 참여했던 할머니나 주부님들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니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사고방식, 지혜, 시선들이 새롭고 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주변부에서 중심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각을 미학적으로 풀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성향이 작업에도 영향을 준거겠죠.
관객: 여성에게만 가중 된 가사노동이라든지 돌봄이 같은 재생산성노동에 대한 주목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약간 있구요.(웃음) 위로공단이라는 제목을 얼추 생각했을 때 여성노동자들을 ‘위로’ 하는 영화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깐 ‘위로’ 보다는 아직 현실은 더 답답하고(웃음) 제목을 <위로공단>으로 정하신 이유는?
반복된 대답이지만(웃음) 일종의 까발린다거나 그런 식의 방법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를 인식 하지 못 하는 분들, 나만 힘들다는 분들, 자기 일이 힘이 드니 다른 사람 일을 이해 못 하는 분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 영화를 통해서 만들어 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고요. 어떻게 보면 좀 무책임 할 수도 있지만 예술이 좀 무책임한 부분이 있기도 해요. 말씀하신대로 부족한 부분은 이 영화를 계기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공단>은 깊이 있게 생각하고 지은 제목은 아니에요. 영화가 구로공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단순히 구로공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구로공단으로 제목을 정하면 관객의 상상력을 막아버리는 같았고 그래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요즘은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는 시대이고 그 다음에 위로도 못 드리는 시대이잖아요. 자기표현을 못 하는 시대인거 같아요. 그런데 반대로 누구한테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감정은 또 강해요. 그래서 <위로>라는 단어 가진 대중적인 코드가 크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위로라는 말이 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굉장히 멜랑콜리한 부분도 있고 근데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대중들에 이 영화를 가깝게 갔으면 하는 측면에서 생각했을 때 <위로공단>이라는 제목이 괜찮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제목이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해석 될 수 있게 다층적으로 해석되길 원했습니다. 사실 <공단>과는 <위로>라는 두 단어가 서로 맞지 않는 느낌이면서 맞는 느낌이기도 하고(웃음) 그분들의 희생이 그 시대의 국가와 가족에게 위로를 주었지만 반대로 지금은 우리들이 감쳐놓고 터부시 하고 있으니 그분들을 찾아서 위로해야 하지 않나 하는 바램도 담겨있습니다.
관객: 까마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리고 영화에서 노래 <희망가> 나오는데 공장에서 일하셨던 저희 어머니가 평소에<희망가>를 많이 부르셨어요. <희망가>를 사용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작품을 만들다 보면 어떤 큰 이야기 보다는 제가 경험 한 것들 중에 좋아하는 것이 눈이 가거든요. 곤충들도 많이 나오잖아요. 물론 여러 가지 해석되는 장면이기는 한데 그런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관심이 가요. 특히 새 같은 경우는 굉장히 끌리는 부분이 많습니다. 근데 보셨겠지만 까마귀는 여러 가지로 해석 될 수 있어요. 일단 제 의도는 노동자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징후적인 표현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출퇴근할 때의 모습을 상징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희망가>를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영화에서 먼저 나오는 노래는 <야근>이라고 70년대 김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앨범에 수록된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4절 까지 있어요. 찾아보시면 재미있고 슬프고 웃기고 참담하고 한번 직접 가사 내용을 찾아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희망가>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이 영화도 <희망가> 같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희망가> 자체도 가사를 보면 어떤 희망을 주지는 않거든요. 그렇지만 그 노래를 통해서 현실, 사회, 삶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희망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미로 저에게 다가 왔고 그래서 사용하였습니다. 영화에서 삽입 된 <야근><희망가>를 부른 사람은 <위로공단>의 조감독이에요. 스물한 살 때부터 제 옆에서 조감독을 했는데 십대 때부터 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가 요청을 했습니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이게 미술일가 영화일까 아무튼 그 경계에 있는 거 같아요. 감독님은 앞으로 영화 쪽으로 더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미디어아트 쪽 작업을 하실지 궁금하고요. 영화에서 한국이 아닌 캄보디아 장면을 넣으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예술의 역할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장르를 또 다른 방식으로 해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경계에서의 작업이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경계를 구분하면서 작업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뭔가를 만들면 사회가 구분을 하겠죠.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저는 소재가 있으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고 제시 하는 것 보다 사건을 둘러싼 여러 시각들을 조망하는 사람인거 같습니다. 한국회사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캄보디아의 역사들을 통해서 예를 들어 앙코르와트 장면도 그 건축물이 무너졌지만 사람의 노동으로 건축한 사원이고 그 폐허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인간의 노동력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노동개념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 시키고 싶었습니다. 항공승무원도 땅콩회항사건이 있기 전까지 영화에 넣지 말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웃음). 저는 근데 다 똑같다고 보거든요. 일하시는 분들의 계층, 국적, 비정규직, 정규직, 월급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고 저는 노동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싶은 부분이 있었기에 캄보디아에 가서 촬영을 하게 된 거죠.
관객: 영화가 인터뷰로 이루어졌잖아요. 중간 중간에 들어간 인서트 장면은 장면 전환을 위해서 넣은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건 노동과 삶의 고단함을 이겨낸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터뷰 만 계속 있게 되면 관객들에게 힘든 부분이 있죠. 말을 듣는 것은 고도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잠시 중화시켜주는 이미지가 필요했어요. 물론 이런 풍경과 퍼포먼스가 단순히 그런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70/80년대 봉제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장이 지하에 있어서 먼지 같은 것이 쌓여 눈코 입을 막아서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저는 그때 죽은 사람을 염을 한다는 느낌 받았어요. 시체에 염을 할 때 코도 막고 입도 막고 다 막거든요. 그래서 공장이 가족들을 행복을 찾기 위한 공간인데 삶의 공간이 아니라 반대로 그분들에게는 죽음의 공간이었구나. 그래서 흰 두건을 쓴 장면은 그런 느낌을 표현 하고 싶었습니다.동시에 우리들이 터부시 하고 무시한 공순이라고 불렀던 그렇게 두건을 쓴 채 살아가야 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에 이제는 새로운 무언가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미도 있고요. 퍼포먼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자매애입니다. 여성노동자가 가장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여성 동료들, 여성선배들이고 여동생들이었고 이렇게 자매사이 같았던 연대감이 이분들을 그런 혹독한 노동과 투쟁 속에서 지탱 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죠. 실제로 언니가 일하는 회사로 여동생이 취직하는 일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