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제
[오래된 미래]
한 소녀가 재채기를 하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황급히 거리를 둡니다. 오늘날의 풍경으로 상상되겠지만, 1918년 불어 닥친 스페인 독감 당시 촬영된 <키다리 아저씨>(1919)의 한 장면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미래가, 실은 오래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과거를 특권화 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교훈적이라기보다, 전략적입니다. 무언가를 ‘오래된 미래’라고 지정하는 것은, 그 무언가를 (특권화 된 과거를 통해) 도래해야 할 미래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교훈과 전략 사이에서, 영화 몇 편을 골라보았습니다.일정: 10/01(금) ~ 10/03(일)
주최: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무료관람 : 구글 폼 선착순 신청 아래 링크 클릭
매회차당 1인 1좌석 신청가능
괴물, 유령, 자유인
https://bit.ly/괴물유령자유인
송해 1927
https://bit.ly/송해1927
movie picnic in Central Park
https://bit.ly/무비피크닉인센트럴파크
집의 시간들
https://bit.ly/집의시간들
나의 한국영화
https://bit.ly/나의한국영화
손수현 배우전
https://bit.ly/손수현배우전
10/1(금) | 10/2(토) | 10/3(일) |
13:00 송해 1927 GV | 13:00 나의 한국영화 &김홍준 교수 강연 | |
16:00 movie picnic in Central Park GV | 17:00 손수현 배우전 GV | |
19:30 괴물, 유령, 자유인 GV | 19:00 집의 시간들 GV |
관념이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영화에서 관념이 빠질 수 없다고, 더 나아가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어쩌면 빠진다는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프레임에 실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연출이며, 거기엔 어떤 방식으로든 관념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니깐, <괴물, 유령 자유인>이 기존의 영화들과 차이가 있다면 어떤 관념을 어떠한 상태로 가져오는 것이 아닌, 반대로 상태를 관념으로 끌고 온다. <괴물, 유령, 자유인>에서 홍지영 감독은 스피노자의 철학이라는 관념에 입각해 현대의 퀴어의 상태를 질문한다. 성심과 은수는 동성커플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던 두 사람은, 공간이 점점 도시 쪽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 성심과 은수의 도시에서의 모습은 어딘가 불편해보이고, 이는 배우 성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이 현실에 머무를 때의 모습은 시종일관 낯설어 보이는데, 그것은 이들이 자신들만의 ‘환상’이라는 도피처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 ‘환상’들은 이내 현실에 틈입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것이 그들만의 현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세계들은 혼자만의 것이라 고독하다. 거기엔 죽음이 느껴진다. 홍지영 감독은 이 ‘환상’들을 스피노자의 관념을 시각화한 세계로 들고 와 이내 질문한다. ‘괴물들과 유령들은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고.’ 하지만 결국 이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스피노자라는 관념만으로는 부족하다. 환상이 현실로 돌아올 때 거기엔 실재하는 사람이 있다. 성심이 깨어났을 때 은수가 있었고, 은수는 깨어났을 때 성심을 찾으러간다. 이내 그들이 만났을 때, 그들의 ‘환상’들 또한 맞부딪친다. 그 ‘환상’이라는 관념은 비로소 용기가 되고, 용기는 현실로 변환하도록 이끈다. <괴물, 유령, 자유인>에는 더 많은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내게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관념과 실재가 오가는 치열한 사유의 구조이다. 스피노자의 관념으로부터 홍지영 감독이 본 것은 괴물과 유령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의 연대가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by 류승원 관객프로그래머 |
송해라는 한 개인이 가진, 일종의 신화적인 이미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8할 이상은, 아마 세월의 흐름을 온몸으로 거슬러 온 그의 (경탄에 가까운) 생명력에서 비롯될 것이다. 94년이라는 시간이 그의 몸에 새긴, 날카로운 세월의 흔적들.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곧 하나의 시대에 열광하는 것과 같다. ‘오래된 미래’ 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들 중에는 송해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도 있었다. 새파랗게도 어린 나는, 그가 견뎌 온 시간의 궤적을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득해질 때가 있다. 그의 오늘은, 지금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누군가의 가장 먼 미래다. 언젠가 그가 사라질 세상을 나는 아직은 상상할 수 없다. 미래보다 더 먼 미래일 테니까. by 최은규 관객프로그래머 |
Movie Picnic In Central Park
10/02(토) 16:00 상영 후 GV 홍성윤 센트럴파크 대표/ 감독
몸 값 | 이충현 | 액션,스릴러 | 14분 6초
12번째 보조사제 | 장재현 | 공포(호러), 판타지 | 25분 41초
그녀를 지우는 시간 | 홍성윤 | 공포(호러) | 39분 54초
칠흑 | 이준섭 | 가족, 스릴러 | 28분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데 변함없이 단편 독립영화를 기다리는 곳이 있다. 별다른 이력도 소개도 필요 없이 배급이 필요한 영화는 언제든 환영한다는 이곳은, 소풍을 온 듯 설렌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어 정말 영화를 위해 마련된 공원이 아닐까 싶다. 센트럴 파크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과 현재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함께 보는 이 기획전은 장르물을 선호하는 관객을 위한 자리다. <12번째 보조사제>(장재현, 2014) <몸값>(이충현, 2015) <그녀를 지우는 시간>(홍성윤, 2020) <칠흑>(이준섭, 2021) 이 네 편은 기성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소재와 전개 방식, 플롯 전환 등 단편 독립영화가 지닌 규모의 한계를 넘어서 기발한 상상력으로 영화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뿐 아니라 배리어 프리, 코믹, 로맨스, 여성영화 등 센트럴 파크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단편 영화의 지속 가능한 활로를 찾기 위해 여전히 작고 가까운 회사로 남아 있다는 센트럴 파크의 오늘을, 다가올 미래를 기다려본다. by 곽라영 프로그래머 |
나는 나와 함께 하는 공간들을 사랑한다. 같이 때 묻고 같이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공간들. 한때는 나의 보호막이었다가 나의 친구였다가, 한때는 간절히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가, 한때는 너무나도 돌아가고 싶은 곳. 나의 집. ‘집의 시간들’은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에 담긴 사람들의 시간을 담는다. 나에게도 나만의 ‘둔촌주공’이 있다. 내가 22년 동안 살던 집은 주변의 집과 함께 헐려 그 자리엔 10층짜리 빌라가 들어 서 있다. 오래된 집일수록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사람을 돌보듯 집을 돌보는 것이 귀찮고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집에 정이 든다. 집이 나를 돌보듯 내가 집을 돌본다. 그렇게 집과 같이 나이들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시간이 집의 시간이 되는 경험을 한다. 상처받을 때도 위로받을 때도 있던 그 집.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엄마에게 다시는 이 집을 볼 수 없다니 슬프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 집에 우리가 아닌 다른 누가 살고 있다는 게 더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집. 사랑했던 집. 그 집에 대해서 자주 떠올린다. 둔촌주공을 마주하며 느꼈던 그 감정이 왠지 모를 위로였다. by 임아현 관객프로그래머 |
떳떳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지고 있었고, 시네마테크 같은 근사한 이름들은 멀게 느꼈던, ‘굿다운로더’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과거. (합법 영역이 욕망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웹하드를 통해 한국고전영화-사실 거의 모든 영화-를 다운로드 하고, 봤다. 다른 영화 파일과 달리, 한국고전영화는 구성이 유달리 이상했는데 꼭 어떤 사람의 해설이 영화 앞에 붙어있었고, 때때로 출연진과의 짧은 대담이 이어지기도 했다. 뒤늦게 알았다만 그 파일은 ‘한국영화걸작선’을 녹화한 것이었고, 해설자는 김홍준이라는 사람이었다. <나의 한국영화>는 김홍준이 한국영화걸작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비디오를 획득할 수 있었던 위치를 활용해 만든, (모든 에피소드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오디오비쥬얼에세이’ 작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한국영화>를 시네필 1세대-문화원 세대-가 바라본 ‘한국영화’, 또 오디오비쥬얼에세이의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가능성이 담겨있는 작품이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고 천진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나의 한국영화>가 저작권을 클리어하지 않고 제작되었다는 점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한국영화’라는 간단한 이름처럼, 그저 대면하고픈 작은 요구에서 관점의 순수성이, 그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형식이 가능했던 거라 믿는다. <나의 한국영화: 에피소드 4 키노99>는 Youtube에 업로드 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로 마지막 배경음악은 제거 되어있는데, 제거 된 노래의 이름은 ‘Je te veux’ 한국어로는 ‘당신을 원해요’다. by 금동현 관객프로그래머 |
손수현 배우전
10/03(일) 17:00 상영 후 GV 손수현 배우 참석
마더 인 로 | 신승은 | 코미디 | 23분 46초
프론트맨 | 신승은 | 드라마 | 17분
십장생 | 정재연 | 스릴러 | 30분
선풍기를 고치는 방법 | 손수현 | 드라마 | 10분
손수현이 가진 표정이 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를 마주보고 있으면 어떤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선풍기를 고치는 방법>(2020)에서는 시나리오 속 캐릭터와 감독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십장생>(2021)에서는 막상 깨어나면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꿈을 꾸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관객을 속인다. 손수현은 티 없이 맑은 얼굴부터 이미 삶의 미지근함을 알아차려버린 얼굴까지 가지고 있다. <마더 인 로>(2019)에서는 누구도 속일 수 없을 것 같은 눈빛의 민진이를 연기하고. <프론트맨>(2020)에서는 교복을 입은 채민이와 30대의 채민이를 모두 표현한다. 그럼에도 어떠한 이질감도 느낄 수 없었다. 손수현은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배우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그의 목소리이다. 손수현의 다정하기도 매정하기도 한, 천진난만하기도 묵직하기도 한 낮은 톤의 목소리는 한 번 귓가에 들어온 이후로 쉽게 빠져 나갈 줄을 모른다. 영화의 러닝 타임 내내 듣더라도 어떠한 피로감도 주지 않는 목소리는 그가 탁월하게 타고난 무언가 중 하나이다. 네 편의 단편 영화로는 손수현의 역사를 모두 열거할 수 없다. 그는 무수히 쓰고, 무수히 찍고, 무수히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영화의 역사가 어딘가에 새겨진다면 손수현의 이름이 한 페이지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믿는다. 손수현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목소리로 좋은 말들을 한다. 꾸준히 여성 영화를 만들고, 동물들의 삶을 언급한다. 그런 사람의 작품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생기고야 만다. 이 믿음은 언제까지고 나를,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해본다. by 박정윤 관객프로그래머 |
손수현 배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