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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 <셀프-포트레이트 2020>
04월 30일(금) 18:30
GV: 이동우 감독 참석
무료상영
관객프로그래머 추천사 by 금동현 관객프로그래머
천치처럼 영화하기
여기 노후 대책을 준비하지 않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벌금을 내지 않고 유치장에 다녀온다. 그는 길을 건널 때 신호를 보는 법이 없다. 또 어떤 이는 그가 아버지의 제사상을 발로 걷어찼다고 전한다. 그는 라흐마니노프와 로베르 브레송을 좋아하는 범죄자, 배덕자다. 그는 2000년 베니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초청된 <자화상 2000>의 감독 이상열이다. <자화상 2000>을 만들 때 그는 두 문장에 기댔다고 한다. 이상열은 지금도 그 문장에 거한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죽기 전에 죽어라”
2000년 09월 영화비평지 《KINO》에는 이상열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터뷰에서 이영재는 물었다. “당신들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이상열은 이렇게 대답했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해요. 영화를 해나가면서 결국 나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완성해 가는 도구이자 동반자와 같은 것이 아닐까?” <자화상 2000>을 끝으로 이상열은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이상열의 기록은 없다.
거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도탑게 안고, 폐지 줍는 노인을 도우며, 넘어지는 오토바이를 세우며, 영화 이야기를 하면 북받치는 이상열을 만났을 때, 이동우는 그가 “딱 내 미래였다.”고 느꼈고, 그에게 “영화 만드는 걸 도와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셀프 포트레이트 2020>는 이상열의 <자화상 2000>의 속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는 선형적으로, 이상열의 속편을 만드는 과정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셀프 포트레이트 2020>의 시간은 섞여 있다. 푸티지도 섞여 있다. 이 형식은 지젝의 분류법을 따라 천치-이상열를 위해 또라이-이동우가 고안한 것처럼 느껴졌다. 20년 전 인터뷰처럼 완성되는 것으로서 “나 자신” 곧 천치를 산출하기 위해 가공된, 문법에 의탁하지 않는 참된 문법. 여기서 무언가 죽고 무언가는 살아남는다.
작품정보
셀프-포트레이트 Self-portrait 2020, 2020|다큐멘터리|168분|한국|12세관람가
감독: 이동우
이동우 감독이 종로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숙자를 주인공으로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아침부터 취해서 이동우 감독에게 돈을 뜯어내는 걸로 첫 등장한 이 남자는 유치장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브레송, 오즈, 하길종을 입에 올리는 수상쩍은 인물이다. 여러모로 대책 없어 보이는 그는 <자화상 2000>이라는 단편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다 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기묘한 우정의 기록이다. 가난한 청년 영화감독이 20년 전 어느 유망한 청년감독에게 보내는 존중(오마주)의 영화이자 그가 실패한 자리에서 이동우 감독이 해낸 두 번째 작품이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