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프로그래머 55자평 & 별점 평가
손호석: 비타협영상집단이 만든 불친절한 영화, 가치는 충분, 재미는 불충분. ★★★
박은영: 중의적인 표현. 관객의 다양한 해석, 무한한 상상이 가능한 영화, 한번쯤은 봐야할 영화. ★★★
허유란: 이 시대를 꼬집고 비트는 통쾌한 유머. ★★★
허성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봐야 소리없는 아우성! 하지만 우리는 GEE를 잊지 않고 괴성을 지른다. ★★☆
한종해: 입맛에 맞는 영화만 허가하려는 망상을 가진 정책당국도, 5년의 투쟁 끝에 상영된 철지난 코미디 영화도, 모두 자가당착. ★★☆
조성윤: 상영 제한이 풀렸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되고 있다. 될 것이다.★★★
신유정: 5년만에 드디어 만나게 된 포돌이의 웃픈 풍자매들리. 이 영화, 코미디라기엔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정석원: 5년이 지났건만 변한 게 없는 씁쓸한 현실. 불편한 영상 속에 숨겨진 불편한 현실을 기억하라. ★★★☆
강원희: 5년이 걸려 개봉한 영화가 5년 후에 보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 더 대단하다. 오랜만의 신선한 영화 그리고 친구들과 재미나게 찍은 비디오 영화의 느낌!★★☆
관객프로그래머 리뷰
<자가당착>을 둘러싼 세 가지 자가당착
첫 번째 자가당착
김선 감독의 신작(?)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에 대해 논하면서 검열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2009년에 제작되어 다음해인 2010년에 <인디포럼> 신작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부문에 초청되고 그 이듬해인 2011년에는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과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쇼케이스에 초청되는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정작 국내 개봉에는 5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김선 감독은 <자가당착>의 국내 개봉을 위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 여러 차례 등급 신청을 요청했지만, 영등위는 2011년 6월에는 “국가원수를 살해하려는 무기 같은 영화”라는 이유로 2012년 9월에는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을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감독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투쟁 끝에 모두 승소하면서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무효로 만들었고 2015년 7월에 다시 심의를 요청하여 마침내 영등위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아내고 국내 개봉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문제는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부딪히는 지점이 될 것이다.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등위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선정성과 폭력성이라는 사유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 하나 없는 조건 속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은 사실상 상영 금지 처분과 다를 바 없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현격하게 제한하는 사전검열이다. 영등위가 시장의 선택 운운하는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각 도마다 한 군데씩 제한상영관을 운영하지 않을 바엔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차라리 이참에 광역시도마다 하나씩 정부가 운영하는 제한상영관을 두고 모든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상영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두 번째 자가당착
아마 김선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영등위의 이런 검열 상황을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듯하다. 인디토크 GV 자리에서 김선 감독은 이명박 정부시기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것에 충격 받아”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서” <자가당착>을 만들었다고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그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수위의 표현을 담은 영화를 ‘일부러’ 만든 것이다. 이럴 경우 정부의 대응에 따라 두 가지 상황 전개가 가능하다. 그중 하나는 정부가 비록 못마땅하더라도 그냥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여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승인을 하는 것인데,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일이 매우 싱겁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영등위는 감독이 의도한 대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고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선택을 했다. 문제는 이런 정부의 예상되는 태도보다는 영화를 보는 일반 국민들의 반응에 놓여 있을 것이다. 관객 대다수가 이 영화의 표현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느낀다면 정부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사실상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마 김선 감독도 이 점을 충분히 고민했을 것이고 그렇게 선택한 전략이, 감독 자신의 말처럼, “일부러 조악하고 못 만든 티를” 내는 게 아니었을까? 포돌이 모형이나 쥐 인형 박근혜와 허경영의 가면, 쥐의 탈 등 소품들은 이런 필요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물론 못 만든 티를 내기 위해서 어눌한 연출이나 연기, 조악한 화면 질감이나 음향 등도 한 몫 제대로 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이렇게 ‘못 만든 티’를 내는 영화를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기기 때문이다. 감독 입장에서도 그렇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보더라도 못 만든 영화를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결과가 불러온 기막힌 현실, 감독은 못 만든 티를 낸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관객은 그렇게 못 만들어진 영화를 봐야 하는 현실이 또 하나의 자가당착인 셈이다.
세 번째 자가당착
하지만 김선 감독의 선택지가 “일부러 조악하고 못 만든 티를” 내는 영화를 만드는 것밖에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의 이 발언 속엔 숨은 뜻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러 조악하고 못 만든 티를” 내긴 했지만 작품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관객들이 찬찬히 주의 깊게 살펴보기만 하면 충분히 볼 만 한 가치가 있고 숨겨진 작품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자가당착>에서 이명박으로 짐작되는 아버지와의 만남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포돌이는 만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냉담한 대답, 그리고 허경영과 바람난(?) 어머니 박근혜에 분노해 아버지를 마음속에서 지우고 어머니를 살해한 후 고아가 된다. 이웃 주민들에게 뭇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된 포돌이는 이후 민중을 상징하는 쥐의 탈을 쓰고 거리로 나가 노무현의 빈소를 찾아가 문상을 하지만 쫓겨나고 거리를 헤맨다. 이렇게 큰 줄기만 보면 <자가당착>은 포돌이의 성장영화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성장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근거가 빈약하고 따라서 그 전개가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루는 포돌이의 다리 이야기는 혼란만 가중시키는 듯하다. 시위를 막는 과정에서 잃은 다리를 다시 만들어 붙이지만 이웃 주민들과의 마찰로 다시 다리를 잃게 되는 이야기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돌이의 성장이라는 메타포? 경찰의 자립 혹은 독립이라는 메타포? 하지만 이렇게 보려면 원래 다리가 있었다는 설정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10 대한늬우스”와 예고편 그리고 본편으로 구성된 <자가당착>의 구조도 그다지 동의하기 어렵다. 당시에 유행하던 코미디 코너를 활용해 제작된 정부의 4대강 홍보 영상을 풍자하고 비웃기 위해 만들어진 “2010 대한늬우스”를 이미 제작된 영화 속에 끼워 넣기 위해 이런 구조를 생각해낸 것일까? <자가당착>이 코미디영화이기에 이런 구조가 별 무리 없어 보이긴 하지만 결코 신선하지도 않은데다가 재미도 없다. 우린 이미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를 통해 이런 구조를 접하기도 했을 뿐더러 “2010 대한늬우스”의 풍자는 핵심을 찌르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웃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영화의 거의 대부분 장면이 그렇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 관객들이 보기에 <자가당착>은 풍자도 해학도 없고 위트도 개그도 없는 코미디 영화인 셈이다. 그리고 이 점이 결국 이 영화를 둘러싼 마지막 자가당착이겠다. by 한종해 관객프로그래머
재미를 넘어선 가치가 있는 영화 <자가당착>
<스포일러 있지만 당신은 스포일러에 감사하게 될 것임>
아주 야한 영화인 줄 알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는데 진지하고 철학적인 영화를 보게 된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떠할까? ‘흠 야하진 않지만 좋은 영화로군.’ 이라고 생각한다면 다행이지만 ‘뭐야! 안 야하잖아 실망인데’ 라는 생각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홍보팀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거나 오해하기 쉬운 정보를 주면서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영화들 말이다.
나는 그런 방식의 홍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득이 될 게 없지만 영화 입장에서도 득이 될 게 없다고 본다. 대중적인 영화인 것처럼 포장을 해서 관객을 조금 더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기대와 다른 영화를 경험한 관객들이 만족할 확률은 매우 낮고 나쁜 입소문만을 초래할 뿐이다. 독특한 영화일수록 자기 영화가 가진 장점과 위험요소를 정확하게 관객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효과적인 홍보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렇게 장황하게 썰을 푸는 이유는… 그렇다. 이 영화는 매우 대중적이거나 포복절도하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장르가 코미디로 되어 있지만 깔깔깔 웃기는 힘든 영화다.
영화는 포돌이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아빠는 집에 잘 오지 않고, 엄마의 방에는 낯선 아저씨가 있다. 어버이날은 다가오고 포돌이는 아빠에게 선물할 홍삼 선물세트를 준비하고 아빠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우리 내일 만날 수 있나요?
포돌이는 하반신이 없는 인형이다. 하지만 하반신은 이미 만들어 두었다. 아마도 아빠를 만나는 날 하반신을 장착하려는 생각인 듯 하다. 그런데 갑자기 쥐들이 나타나 포돌이의 하반신을 망가뜨리고 온 방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포돌이는 쥐들을 소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빠의 답장을 기다리는데…
영화의 대부분은 인형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인형에 줄이나 철사를 달아서 움직이는 방식으로 촬영된 장면도 있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장면도 있다. 표정이 변할 수 없는 포돌이가 하는 감정연기를 눈여겨보시길.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재미를 넘어선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방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조롱하는 영화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모든 사람들을 놀리고 풍자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새로운 영화, 파격적인 영화, 혁식적인 형식의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 추천한다. by 손호석 관객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