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Eyelids , 2016, 한국)|드라마| 2018.04.12 개봉|85분|15세관람가
상영일정 04/12(목) 17:00 20:40 04/13(금) 16:45 04/14(토) 11:00 14:50 04/15(일) 13:00 20:40 04/16(월) 15:00 04/17(화) 14:50 20:35 04/18(수) 13:00 04/20(금) 14:45 04/22(일) 13:00 [인디씨네토크] 04/23(월) 11:00 04/25(수) 15:20 04/26(목) 10:30 04/29(일) 11:00 04/30(월) 18:35 (종영)
감독 오멸
먼 길 떠나는 당신, 든든하게 먹이고 보내고 싶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섬 미륵도.
이곳엔 먼 길 떠나기 전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는 떡을 찧는 노인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커다란 폭풍이 몰아치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섬에 찾아 온다.
그러나 쌀을 빻을 절구통이 부숴지고,
우물의 물이 썩어 더 이상 떡을 만들 수 없게 되는데.
관객프로그래머 프리뷰
✔️깊은 심연의 바다에서 그가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졸음을 쫓기 위해 눈꺼풀을 잘랐다는 달마의 이야기를 전하며 무엇을 그렇게 보고 싶었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노인이 있다. 이 노인은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물고 간다는 미륵도에서 떡을 만든다. 어느 날 이 곳에 폭풍이 치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섬에 찾아오게 된다. 노인이 ‘나이도 어린게 여기 왜 왔노!’ 라고 호통쳐도 그들은 떡을 먹으러 왔다고 할 뿐이다.
2016년에 제작했으나, 세월호 이후 4년만에 극장에 걸게 된 이 작품은 4월의 또 다른 아픔인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 <지슬2 – 끝나지 않은 세월 >을 만든 오멸 감독의 작품이다. 오멸 감독은 <지슬>에서 상처받은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국내외적인 찬사를 받았고, 이번 <눈꺼풀> 또한 그 만의 방법으로 표현으로 넋을 기리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자연 다큐멘터리 같았던 이 영화는 섬으로 밀려오는 작은 균열에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라디오에서 진도에서 출발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다시 그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절망과 무력감을 느낀다. 푸르고 깊기만 한 바다, 일렁거리는 불빛에서 아물지 않은 창백한 슬픔을 느낀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등장한다. 뱀과 쥐, 흑염소, 지네 등 죽은 자가 머물러간다는 섬에서 이런 생물들과 같이 자연스레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 영화에서 쥐는 뉴스를 전해주던 라디오를 부수고, 노인의 절굿공이를 부러트리고, 우물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된다. 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언론을 통제하고,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를 막고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노인은 이런 쥐를 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떡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쥐를 가만히 놔두면 안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에게도 일상은 절구가 부서진 것 만큼 낯설고 슬펐다. 슬픈 절규는 우리의 귓가를 파고든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떡을 만들며 그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자 할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가. 우리는 세상이 주는 환멸과 지루함에서 얼마나 눈꺼풀을 뜨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 임아현 관객프로그래머
스스로 마모되는,
<눈꺼풀>은 스스로 마모되는 영화다. 오멸 감독은 83분의 시간을 거쳐, 영화를 한 점으로 모은다. 영화가 펼쳐지는 상상적 장소와 제의, 노인의 서사 등, 일련의 화소(話素)들은 의뭉스럽게 제시되었다, 이내 포말처럼 사라진다. 한 편의 영화로서, <눈꺼풀>이 남기는 것은 노인의 욕과 바람 소리. 그리고 조용히 파도치는 바다, 그래 바다의 이미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어는 도산했다. 세상을 떠받치던 질서의 체계, 상징적 네트워크는 모조리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그 날 이후, ‘총체성’이라는 관념은 구세대의 나르시시즘과 무지 안에만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도르노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의 서정시는 야만이다.”
모든 것이 변했다. 관객과 예술이 맞닿는 공간에서 기존의 이미지는 탈각됐다. 바다는 포용을 말하지 않고, 고교생의 싱그러움 아래 이상한 애상이 감돈다. 정서구조의 변화는 관객에게 그치지 않았다. <터널>부터, <태양의 후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책임을 방기해 왔던 한국 대중 매체들도 ‘국가의 책임’따위의 원칙을 대사로 일갈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변화가 족할지는 의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던진 것은, 단지 언어를 위시한 기호의 습관 체계 변화가 아니라, ‘인간’ 혹은 ‘국가’ 등 관념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였기 때문이다. 영화-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바깥에서는 숱한 욕망의 누적이 참사를 낳을 때, 영화는 무엇을 하였는가? 혹은 할 수 있는가?
오멸 감독의 <눈꺼풀>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종교•사회적 상징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나, 각각에 대한 해석을 밝히는 방법을 택하진 않겠다. 혹은 해석적 독해를 당신도 거부하길 당부한다. 영화라는 대상을 우리의 지식 안에 묶어 판단하려 할 때, 우리는 각 ‘영화’를 식민화하는 것이다. 당신만의 독해로 영화를 역어볼 때, 그대가 남길 것은 어차피 얼마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눈꺼풀>은 결국 한 점으로 향하는 영화니까.
결국 우리가 <눈꺼풀>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도 이것이다. “당신은 ‘세월호’라는 사건 앞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눈꺼풀>은 아마 나름의 대답을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노인의 전화기는 더 많은 발신을 해야 한다. 수신(受信)과 종교적 태도 너머, 발신(發信)하는 영화를 꿈꿔본다.
✍ 금동현 관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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